책 그리고 생각
하얼빈 _ 김훈
화곡동도깨비
2023. 12. 29. 00:07
말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941~1909)를 쏜 안중근(安重根, 1879~1910)이 그랬(다고 설명한)다.
사람의 말이란, 그런 것이다.
물론, 자기가 뱉은 말조차 부정하는 자도 있다.
이토를 죽여야 한다면 그 죽임의 목적은 살殺에 있지 않고, 이토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까닭을 말하려는 것에 있는데, 살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세상은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들리게 말을 하려면 살하고 나서 말하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은 혼자서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세상에 대고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일진대, 그렇게 살하고 나서 말했다 해서 말하려는 바가 이토의 세상에 들릴 것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안중근이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다. 이 책에도 신념과 교리 사이 갈등이 담겨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살인'이지만, '국가'도 있다. 땅 위의 나라와 하늘의 나라와의 갈등.
안중근은 자신에게 영세를 베푼 사제를 향해서 '국가 앞에서는 종교도 없다'는 황잡한 말을 하고 교회 밖으로 나가서 이토를 죽였는데, 황사영은 서양 군함을 몰고 와서 국가를 징벌해달라고 북경의 주교에게 빌고 있었다. 두 젊은이는 양극단에서 마주 서서, 각자의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황사영은 국가를 제거하려다가 죽임을 당했고 안중근은 국가를 회복하려고 남을 죽이고 저도 죽게 되었는데, 뮈텔은 이 젊은이들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를 가엾이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