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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곡 이야기

하늘 가는 밝은 길이

by 화곡동도깨비 2023. 11. 27.

찬송가 493장 <하늘 가는 밝은 길이>는 장례식장에서 부르는 찬송이라는 인식이 있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찬송에서 '성도의 죽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찬송은 오히려 '성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에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사는 '삶'에 대한 찬송입니다. 각 절 가사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 1절: 슬픈 일, 늘 고생
- 2절: 염려하는 일, 근심과 걱정, 늘 시험
- 3절: 쉬고 싶음, 부족함

이 찬송의 가사는 로지어(J. H. Lozier, 1832-1907)의 <갈릴리 사람(The Man of Galilee)>이라는 시를 소안론(蘇安論, William L. Swallen: 1865~1954) 선교사가 번안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원시를 보면 소안론 선교사가 새로 지은 시라고 해도 무방해 보입니다.

▶ <The Man of Galilee> 가사 https://hymnary.org/text/i_am_on_a_shining_pathway?sort=date&extended=true
 

소안론 선교사는 1892년에 조선에 와서 1932년 73세의 나이로 명예 은퇴할 때까지 평양을 무대로 전도와 문서 선교에 생애를 바친 분입니다. 최초의 조선인 선교사인 이기풍 목사에게 세례를 주었다고도 하지요. 
생뚱맞지만 우리나라에 사과를 들여온 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농학을 전공한 소안론 선교사가 미국에서 사과나무 묘목 300 그루를 들여와 대구와 평양의 선교본부에 절반씩 나누어 전달해서 각 선교본부 근처 신도들에게 묘목을 심게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대구사과와 황주사과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구 조선, 구한말 미국선교사 열전 44 http://www.kctusa.org/news/articleView.html?idxno=12895

이 찬송의 멜로디는 1834년 즈음에 앨리시아 스코트(Alicia Scott, 1810~1900)가 작곡한 스코틀랜드 가곡 <Annie Laurie>에서 따왔습니다. 사랑하는 여인 애니 로리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를 알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찬송의 멜로디는, 성령에 충만해서 만든 것만 써야 하는 것일까?"


찬송가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와 605장 <오늘 모여 찬송함은>은 어떻습니까? 둘 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교향곡 제9번 중 <환희의 송가(1824)>를 멜로디로 사용합니다. 애초에 찬송의 목적으로 쓰인 곡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대중가요 같은 <Annie Laurie>의 멜로디는 찬송으로 적합하지 않고, 고상한 교향곡 멜로디는 써도 괜찮은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