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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리고 생각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_ 김지수

by 화곡동도깨비 2024. 1. 22.

어령 형님!
형님께서는 아주 아주 큰 어른이시지만, 억겁의 시간을 탐구하는 분께서 40년도 안 되는 출생의 시차를 가지고 노여워하시진 않을 거라 생각하고 이렇게 불러 봅니다. ('선생님'은 진부하고, '스승님'은 간지러워서..)
 
'물고기가 사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상태가 죽음'이라는 이야기로 '죽음이 무엇인지 전해줄 수 없다'고 하신 주장(303p)은 역시 신선했습니다. 매일밤 이어지는 '죽음과의 팔씨름'(22p) 이야기도 존경스럽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형님께 딴지 하나를 걸려고 합니다. 형님은 스스로를 '꺼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었다(39p) 하시면서 '내 머리로 생각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셨죠.(38p) 그러면서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와 관련된 경험을 말씀하셨습니다.
증기기관 발명가는 제임스 와트라는 게 우리 상식인데, 제임스 와트의 직업은 '증기기관 고치는 엔지니어'였다는 골 때리는 이야기.(39p) 증기기관을 처음 만든 이는 토머스 뉴커먼(Thomas Newcomen, 1
663~1729)이고. 그래서 저도 '제 머리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셨죠?(96p) "솔로몬이 '아이를 반으로 쪼개 가져라' 했을 때, '죽은 아이 반쪽을 뭐에 쓰려고 저 가짜 어머니는 좋다고 했을까? 아 이거 거짓말이구나'하고 알아야지."(98p)라고 하시면서.
전 의아했습니다. 가짜 어머니가 '좋다'고 한 이유를 형님께서는 정말로 모르시는 걸까?
 
그러다가,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계신다는 두 번의 '신비로운 사랑' - 학창시절 스친 건너편 전차 여학생과, 여섯 살 무렵 동전 말을 옆에서 함께 타던 소녀(161p) - 부분을 읽고, '아! 이 형님은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솔로몬이 아이를 반으로 쪼개 가져라 했을 때, 가짜 어머니는 죽은 아이 반쪽을 뭐에 쓸 수 있을지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좋다'고 한 이유는, 진짜 엄마가 잘 되는 게 싫었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는 죽어서 나는 아프고 슬픈데, 저 여자만 아이랑 잘 살 것을 못 견디는 게 그 여자('신비로운 사랑'이라는 표현이 어색한 범인)거든요.
 
형님. 제가 오늘 너무 무례하게 굴었죠? 점점 '내 머리로 생각하는' 게 어려워지는 가운데, 이래저래 까마득한 녀석이 '내 머리로 생각해야 한다'는 형님의 당부를 새기면서 까부는 걸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책 많은 이야기 중에서 딴지 걸 내용 찾는 것도 나름 고역이었습니다.)
 
저는 형님께서 일생 동안 파 오신 우물의 흔적과, '철창을 나온 호랑이'를 마주보는 용기를 존경합니다. 파도와 촛불의 흔들림 같은 '살아있는 것들의 힘' 대신 '수평의 중심점'을 얻으신 형님.(294p) '내가 죽어 보니까 말이야..'라고 하시면서 새로 알게 된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어 안달이실 형님 모습을 상상하면서.. 다시 한 번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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